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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3

그날, 우리 모두의 얼굴에 무지개가 떴다. ​2023년 8월 30일, 오후 6시.내가 태어나서 처음 본 쌍무지개였다.그리고 거의 수십 년 만에 본 무지개이기도 했다.​그 시절은 코로나라는 거대한 그림자가 세상을 뒤덮고 있었고, 사람들은 서로 눈을 마주치지도, 말을 건네지도 않았다.마스크 너머로 표정조차 읽을 수 없는 날들이 이어졌다.그리고 팬데믹이 끝난 뒤에도, 사람들의 태도는 쉽게 바뀌지 않았다.물리적 거리두기는 사라졌지만, 마음의 거리는 여전히 그대로였고, 스쳐가는 마주침은 어색함만 남긴 채 조용히 지나갔다.대화 대신 침묵이, 인사 대신 고개 숙임이 일상이 되어버린 시간들이었다​그런데 그날은, 무언가 달랐다.하늘을 가로지른 쌍무지개가 사람들의 마음을 열어주었다.모두가 오랜만에, 정말 오랜만에 설레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여기저기서 "와, 무지개.. 2025. 4. 11.
빛에 물든 기억 짙은 구름 사이로 쪼개진 석양이 날카로운 빛줄기를 뿜어내며 하늘을 가로질렀다. 안개에 스며든 분홍빛이 부드럽게 퍼지는 빛에 가던 이들이 걸음을 멈추고 숨을 죽였다. 그러나 내게 가장 선명하게 남은 것은 그 몽환적인 석양이 아니라, 그 빛을 온전히 품에 안은 듯 서 있던 우리 아이의 모습이었다. 마치 라이온킹에서 아빠가 두 손으로 번쩍 안아올릴 때, 빛 속에 온전히 감싸인 심바처럼 말이다. 아마도 그것이 엄마이기에 가능한 기억일 것이다.​​​​ 2025. 4. 10.
폭싹 속았수다. 계절은 돌고 돌아 언제나 아름다운데, 그 사이 헌신하며 살아온 노부부의 모습은 흐드러지게 핀 꽃들과 대조를 이루었다. 벚꽃과 개나리가 활짝 피어 그 어느 때보다 곱고 찬란한 봄날, 그들의 손은 세월의 흔적을 품고 서로를 꼭 붙잡고 있었다. 그들이 늙어버린 모습은 화려한 꽃들의 생동감과 대비되며, 가슴을 콕콕 찌르는 듯한 깊은 여운을 남겼다.​ ​ 2025. 4. 10.